천연두와 원숭이두창

원숭이두창은 1713년 처음 심각한 전염병으로 알려져있던 천연두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의료 발전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때의 천연두와 지금의 원둥이두창은 어떤 패턴이 닯아있을까?

현명한 상류층 메리 피어폰트

메리 피어폰트는 읽기를 좋아하는 아름답고 강한 의지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두가지 행운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1600년대 후반 영국 귀족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유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지위 못지않게 학문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집안의 일원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딸로서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진 행운아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항상 그렇게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선택한 남편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도망쳤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샌드위치 백작의 손자인 에드워드 워클리 몬태규 였습니다. 괜찮은 집안이였지만 메리집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만남과 결혼은 상류층들에게 가십거리로 떠돌았습니다. 둘은 결혼을 했고 몬태규는 정치를 조금씩 입문하고 있었습니다. 1713년에 첫째 아들을 출산했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전 지역에 돌고 있는 전염병이 돌고 있었고 그 첫 피해자는 메리의 남동생이였습니다.


천연두와 원숭이두창
원숭이두창

천연두 첫번째 희생자 남동생

메리의 남동생은 열두 살이였을 때 갑자기 병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알수 없는 통증과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는 지 불과 몇 주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무서운 질병의 명칭은 ‘천연두’였습니다. 원숭이두창과 비슷한 천연두는 당시 영국에서 피할 수 없는 매우 무서운 질병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발생했습니다. 천연두는 빠르게 확산되는 전염병으로 특징이라면 어린아이들에게 더 위험했습니다. 특별한 증상은 없었으나 1~2일 정도는 두통과 약간의 발열만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빠른 심박수, 땀이 나는 열, 구토 및 갈증이 심해지면서 증상은 악화됩니다. 그러고나면 피부에 작고 가렵고 분홍빛이 도는 발진이 나타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검은색으로 변하고 깊어집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악취가 나는 고름물집으로 변합니다. 수천개의 고름 물집이 몸 전체에 나타나고 심지어 입,목구멍, 콧구멍, 성기까지 가려운 물집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증상이 심각해지니 몸으 끝없이 부어오르고 목구멍과 못구멍까지 부어올라 호흡까지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때 의사들은 최고의 치료법이라며 독소를 땀으로 배출해야한다며 동생에게 담요를 뒤집어씌워 땀을 빼게했으니 그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의사는 반대로 차갑고 축축한 시트로 감싸고 창문을 열으라고 했지만 그 어떤 치료도 소용없었습니다.

접붙임의 발견

남동생이 천연두로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메리에게 천연두가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동생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고 의사도 몬태규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메리는 천연두를 이겨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후유증으로 속눈썹이 없어지고 피부도 험학하게 변하여서 인상이 사나워졌습니다. 평생 이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만 메리는 정신을 잡고 무던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얼마 후 몬태균는 영국대사로 임명되어 콘스탄티노플에 부임하게 되어 메리는 아들을 데리고 같이 외국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대사관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는 동안 메리는 무슬림 세계에 빠져들고 여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무슬림 여성들과 친분을 쌓게 되면서 그녀들의 사생활 공간까지 구경하게 됩니다. 그녀들은 지성을 갖추고 여유롭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녀들은 서스럼없이 옷을 벗는 것을 보고 놀란 메리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몸에는 천연두의 흉터가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피부가 너무 깨끗하고 흉터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고 드디어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접붙임’ 시술이 일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접붙임을 받으려는 어린이의 몸에 약간의 상처를 내어 견과류 껍질 속에 천연두 물질을 붙여두는 것 이였습니다. 이 시술을 받으면 보통 9일째 되는 날부터 이틀 동안 아프게 되지만 약간의 발진만 생기고 큰 상처로 남지도 않고 사망하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레디는 이 사실을 알고 1717년에 편지를 써서 이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설득하기는 부족했습니다. 


메리는 유럽 사람들을 설득하여 했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아들을 대상으로 접붙임 시술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메리에게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이 다시 영국으로 다시 가야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나이 든 여성들이 접붙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술할때는 견과류 껍질 속에는 천연두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천연두 환자의 상처에서 채취한 딱지난 고름이 들어있습니다. 그걸 어떤 정맥에 접붙임을 할 것인지 물어보고 큰 바늘에 그 물질을 묻혀서 정맥에 찔러 넣고  비워있는 껍질로 상처를 덮고 붕대로 감습니다. 그 시술을 받은 아이들은 뛰어 놀아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9일째 부터는 열이 조금씩 오르고 최대 4일을 넘기지 않습니다. 발진은 30개 미만으로 생기지만 심각하진 않습니다. 그때의 접붙임은 지금의 인두법이라고 부르는 행위입니다. 메리는 감탄을 했고 이것을 영국 대사관의 내과의사와 프랑스 대사와 논의했습니다. 메리만큼 모두가 감탄하진 않았습니다. 결국 메리는 남편이 영국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메리는 나이 든 여성과 만남을  추진하고 대사관 외과의사를 불러 그녀가 시술하는 것을 잘 보라고 당부했습니다. 나이 든 여성은 그 물질을 여섯살 소년의 팔을 긁은 후 상처에서 나온 피와 물질을 섞어 환부에 대고 문질렀습니다.


아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이제 메이틀랜드의 차례입니다. 소년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바늘 대신 수술용 메스를 이용하여 소년의 다른 팔에 자국을 냈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결과를 위해 접붙임은 통상적으로 양팔에 시술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약간의 물질을 삽입한 다음 상처를 붕대로 감습니다. 그리고 두사람은 경과를 지켜봤습니다. 일주일 후 그 소년은 경미 천연두에 걸렸지만 흉터도 없고 회복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리의 아들은 천연두에 다시는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1700년이였기 때문에 천연두의 원인을 밝히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증상은 두가지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증상이 더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과 증상이 차츰 회복되고 열도 내리며 고름물집이 건조되어 떨어져 나가 질병을 회복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복이 되었다해도 천연두의 특징적인 증상은 남아있었습니다. 어떤이는 눈이 멀어있었고, 깊은 흉터가 남아있거나 거의 모든 환자들의 얼굴은 흉측하게 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수 세기 동안 반복되었습니다. 천연두는 전염력이 매우 강해 벗겨진 피부 조각을 들이마시거나 고름물집을 건드리거나 환자의 옷만 만져도 전염이 되었습니다.심지어 유럽 탐험가와 정복자들은 천연두를 지니고 천연두를 본 적 없는 식민지에 도착해 대학살로 변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 모든 종족을 말살했고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대부분을 몰살시켰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생물학적 집단 학살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천연두는 한번 걸려서 살아나면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970년대 이후로는 단한번도 천연두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천연두와 원숭이두창
원숭이두창

원숭이 두창 “세계 확상 지속”

천연두는 1970년 이후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022년 천연두와 모든 증상이 비슷한 원숭이두창이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심각한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브리핑에 “원숭이두창 발생국가를 방문하고 귀국한 여행객을 대상으로 입국 시 발열체크와 겅강상태 질문서를 받고 있다” 라고 했습니디.

원숭이두창은 3주이내 38도 이상 발열, 오한, 두통, 또는 림프절부종이 있고 가장 특이한 점은 수포성 발진이 나타납니다. 지금 WHO에 따르면 2~4주 증상이 지속되다 대부분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지만 최근 치명률은 3~6%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방역당국에서는 ” 원숭이두창은 코로나19처럼 전파력이 높지 않으니 너무 불안해 하지 말라 “고 당부했습니다. 또한 ”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부터 원숭이두창 진단체계를 구축했고 대응 수단을 갖추고 있다 ” 라고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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